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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    에스터 레슬리

3.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 에디터통신 

   

▶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미래의 까막눈은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사진가 라즐로 모호이너지가 1920년대에 쓴 글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사진이 다른 예술 장르뿐만 아니라 문자문화 자체를 위협하리라는 과감한 선언인데요. 오늘날 이미지가 텍스트를 대체했다는 진단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을 보면 저 선언이 적중한 것을 알 수 있고, 그만큼 사진이 대단히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이자 매체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를 만든 편집자 엄정원입니다. 철학이나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학자가 발터 벤야민일 텐데요. 그에게 사진과 영화라는 새로운 기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겁니다. 기술적 복제, 아우라의 상실 등 현대 예술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나오는 개념들은 모두 벤야민에게서 왔습니다. 이처럼 벤야민과 사진 또는 이미지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그의 글들이 체계적이지 않고 단편과 인용, 이미지와 기억에 의존한 글쓰기 방식으로 이루어진 탓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원서를 발견했을 때 저는 이 한 권으로 벤야민의 논의를 이해할 수 있겠다 싶어서 반가웠습니다. 이 책에는 벤야민의 사진 관련 글이 일곱 편 실려 있고, 영국의 벤야민 연구자 에스터 레슬리의 깊이 있는 해설이 각 글마다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의 눈길을 끌었던 글들은 사진에 관한 벤야민의 본격적인 논의나 이론적인 글보다 사진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이나 어린 시절 추억을 담은 글들입니다. 벤야민은 뛰어난 사진 이론가이기 전에 사진과 그림엽서 수집가이기도 했습니다. 여행을 좋아했던 외할머니가 여행 중 보낸 그림엽서를 보고 모험을 꿈꾸고 먼 곳을 동경했던 그는 자신이 모아 온 그림엽서를 떠올리면 인생의 후반부를 예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곽」이라는 짧은 글은 벤야민이 독일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피해 망명 중일 때 쓴 글답지 않게 유머러스합니다. 성곽이 있는 스페인의 어느 마을에서 지내던 때 가게에서 본 사진엽서에 적힌 글자에서 어린 시절 엽서가 주던 동경을 떠올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온 사람으로서 느끼는 소회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글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이 엽서의 글자를 오해했음을 밝히는 갑작스러운 반전으로 마무리되는데요. 한 장의 사진이 불러온 사소한 오해와 망명자의 처지 등이 담긴 이 글은 벤야민의 인생이나 시대와 겹치면서 묘한 느낌을 줍니다.

 

벤야민에게 사진은 단지 예술과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매체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사진은 정치를, 사회를, 세상을 뒤바꾸는 혁명적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사진에 희망을 걸었음에도 이미 그의 시대에 사진은 정치적 선전과 선동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희망과 불안이 섞여 있던 사진에 벤야민은 매진했고 사진과 사진이 재현하는 도시, 지각 경험, 예술의 혁신 등을 다룰 필생의 역작 『파사주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 이 책은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망명자 벤야민은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운 유럽을 탈출하지 못했고 자살에 이릅니다. 그의 예감대로 이미지의 시대가 된 지금을 벤야민이 목격했더라면 뭐라고 말할까요? 사진에 찍히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어색해 했던 초기 사진의 시대, 자기 과시와 정치 선전의 수단으로 사용된 시대를 지나 이미지로 둘러싸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진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는 다시 한 번 사진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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