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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식

일요일의 역사가

아마추어 역사학자, 20세기 역사학의 흐름을 바꾸다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어느 지식인의 초상 『아동의 탄생』『죽음 앞의 인간』등의 명저를 남긴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 제도권 학계 밖에서 역사를 연구한 ‘일요일의 역사가’로 20세기 역사학을 뒤바꾼 아날 학파 3세대, 심성사의 대표 학자다. 전쟁과 이념 투쟁을 거치며 이분법적 대립이 극명했던 20세기, 보수주의자이자 전통주의자이면서도 정치적 격변과 기술 진보에 유연한 태도를 취한 독특한 지식인의

작가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ès(1914~1984),
발매
2017.06.30
브랜드
[이마]
분야
[역사/인문/과학]
페이지
308p
크기
145*210mm
가격
16,000원
ISBN
979-11-86940-27-3 0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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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역사가필리프 아리에스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ès(1914~1984)(집단) 심성사라는 역사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아날 학파 3세대의 대표 학자이다. 아날 학파는 사실주의적인 방식으로 정치사에 천착하던 전통적인 역사학의 범주를 사회, 경제, 문화, 나아가 일상생활로 넓히면서 현대 역사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도 한동안 아날 학파의 모델과 서술 방식을 차용하여 평범한 개인의 생애나 일상의 세계사를 역사의 무대 위로 불러내는 미시사와 생활사 분야의 역사책이 쏟아져 나왔을 정도로 유력한 역사학의 한 흐름이다.

아리에스는아동의 탄생,죽음 앞의 인간의 저자이자 대형 연구, 출판 프로젝트인사생활의 역사의 공동 편집자로서 활동하며 심성사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고, 죽음과 아동에 대한 그 의 연구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아리에스가 정통적인 역사학자의 경력을 밟지 않고 대학 바깥에서 아마추어 연구자로 활동하여 대가의 지위에 오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며, 그의 창의적인 성과는 이러한 비정통적인 이력과 긴밀하게 연관된다는 점이다. 그의 자서전인일요일의 역사필리프 아리에스 자서전에는 아리에스가 스스로를 규정한, 제도권 학계 바깥에서 활동하며 평일에는 본업에 종사하고 휴일에 홀로 역사를 연구한 일요일의 역사가로서 개인적, 학문적 이력이 담겨 있다. 아울러 이 책은 20세기라는 파란만장한 시대에 대한 한 지식인의 회고로 역사학자 미셸 비노크Michel Winock와 나눈 인터뷰(권말에 수록)를 통해 그의 소회를 살펴볼 수 있다.

   

심성사의 방식으로 쓴 심성사가의 자서전

아리에스는 왕조와 위인들의 연대기, 정치적 사건, 민족 간의 전쟁사 등 기존 역사학의 거대 주제에서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에 접근하여 과거를 살펴본다. 바로 출생, 유년기, 가족, , 죽음에 대한 선조들의 태도는 어떤 것이었을까라는 관점이다. 아리에스에 따르면, 한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그 개인이나 집단에 전해 내려오는 연속적이고 장기 지속적인 속성이다. 이러한 (집단) 심성사적인 관점은 과거를 (구체제로 규정하여) 현재와 단절적으로 파악하는 이데올로기적인 역사학을 거부한다. 이 책은 심성사가인 아리에스 자신이 본인의 생애와 시대를 심성사적인 방식으로 서술한 매우 흥미로운 자서전이다.

아리에스 가문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톨인문주의 가풍과 견고한 가족, 친족 간 유대 관계를 갖고 있었다. 공학 기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최신 과학과 기술 진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왕정주의적 정치의식이 지배적인 모순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아리에스가 태어나 자란 환경은 그의 생애 전체에 걸쳐 영향을 주었다. 변화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변화 속에 면면히 흐르는 전통을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전통적인 가족제도 속에서 유년기와 아동, , 가족, 죽음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이 그의 학문 세계를 결정지었다. 또한 학계 밖에서 독자적으로 연구를 하며 자료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헌정보학에 일찍 눈을 뜬 학문적 방법론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최신 기술을 유연하게 받아들인 집안의 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이 책은 아리에스의 생애사일 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과 교차하는 정치 사회적 사건(전쟁, 레지스탕스, 전후, 68혁명 등), 주요 저작과 당대 역사학의 흐름 등이 골고루 배치된 흥미로운 역사책이기도 하다.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지식인이 증언하는 파란만장한 20세기

아리에스는 스스로를 반동분자라고 칭했다. 이는 유년 시절부터 우파 단체인 악시옹 프랑세즈활동을 하고 우파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학문세계를 발전시켜 온 보수주의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보여 준다. 그는 동생이 전사한 2차 대전을 거치면서 국가나 공동체의 대의가 아니라 권력을 떠받치기 위해 작동한 이데올로기적 전쟁과 국가를 매우 회의적으로 체험한다.

독특한 보수주의자 아리에스는 좌파와 우파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현대 사회에 대한 그의 새로운 관점은 우파로부터는 단절적이라고 평가를 받았고 좌파로부터는 전형적인 반동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65세에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가 될 때까지 그의 연구는 학계로부터도 외면받았다. 반면 이러한 독특한 위상으로 인해 그는 무명이었던 미셸 푸코의 첫 책광기의 역사 출판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아리에스의 아동 연구는 푸코의 권력 이론과 긴밀하게 관련됨) 급진 사상가 이반 일리치와 이념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현대 사회 비판). 그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를 전면적으로 뒤흔든 68혁명 세대에도 공감한다(국가권력에 대한 거부, 소규모 공동체주의, 연대 등의 가치). 두 차례 전쟁과 격렬한 이념 투쟁, 극명한 이분법이 만연한 파란만장한 20세기를 살았던 독특한 지식인의 초상은 이념, 진영 대립이 역사 논쟁으로 비화되는 최근 우리 사회에도 생각할 거리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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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ès(1914~1984)

심성사라는 역사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아날 학파 3세대의 대표 학자인 필리프 아리에스는 소르본대학을 졸업하고 국립도서관, 열대 농업 조사 기관, 출판사 등 제도권 학계 밖에서 활동하며 독자적으로 역사를 연구한 일요일의 역사가였다.

학계 밖 아웃사이더로 평생을 바쳐 연구한 덕분에 그의 저작들은 기존 사학계의 흐름과 구분되는 독창적인 결실을 맺었다. 연대기적 사건사 일색이던 역사학계에서 그는 전혀 새로운 관점 즉 출생, 유년기, 가족, , 죽음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한 인간의 태도라는 관점에서 과거를 파헤쳤다.

우파 지식인이었던 필리프 아리에스는 매우 특이한 보수주의자로서 68세대, 미셸 푸코, 이반 일리치 등과 허물없는 우정을 나눌 정도로 열린 사고의 소유자였다.

예순이 넘은 1978년에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École des Hautes Études en Sciences Sociales(EHESS)의 연구주임 교수로 선출되었다.

지은 책으로아동의 탄생,죽음의 역사,죽음 앞의 인간등이 있으며, 중세사가인 조르주 뒤비와 함께 전 5권의사생활의 역사를 편집했다.




도서목차더보기

머리미셸 비노크 / 7

 

1. 대서양의 일족들 / 12

2. 반바지 소년 시절 / 47

3. 소르본대학과 악시옹 프랑세즈 / 66

4. 전쟁의 계절 / 100

5. 역사의 시간 / 148

6. 바깥세상 / 174

7.나시옹 프랑세즈의 모험들 / 206

8. 새로운 역사가들 / 228

 

인터뷰: 신앙, 정치, 미래에 대하여미셸 비노크와의 대담 / 259

본문 주요문장더보기

1960년대 초, 파리에서는 어느 바나나 수입업자가 아동과 가족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의 이름은 필리프 아리에스, 플롱Plon출판사에서 갓 책을 펴낸 무명 저자였다. 사실 그의 직업은 바나나와 간접적인 관계밖에 없었지만 어떻든 학계보다는 가까운 관계였다. 훗날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줄 그의 역사가적 직관과 발견들에 대해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모르고 있었다. 당시 학계에서는 심성histoire des mentalités가 유행이 아니었다. 우리의 유격대원 역사학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홀로 이 미지의 영역을 탐구해 왔고 몇몇 전투에서 거둔 승리를 아는 사람은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한없이 몰락해 가던 사건사(전쟁, 쿠데타, 정변政變, 과도한 섭정, 그림자 내각 등)에 비하면 사회·경제사(그래프, 물가, 유동 지수, 공황, 계급 등)도 참신하게 여겨지던 때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때까지 가 보지 못한 세계 즉 삶과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의식적·무의식적 태도의 역사라는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온통 정치 문제에 몰두해 있던 나는 아리에스 덕분에 정치적 행동이 사회성, 전통적인 집단 습속, 의식 너머에서 개인들을 정신적 가족으로 묶는 유대 관계의 힘에 기인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_7~8쪽 미셸 비노크머리말

 

우리 집안은 자신들이 속한 앙시앵레짐 세계가 아무 탈 없이 온전하다고 믿었다. 과학의 발전으로 그 세계가 위협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전통주의자들은 정밀과학과 기술들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진보라는 종교를 믿지는 않았다. 바로 이 점이 그들 세계의 독특한 점이었다. 자기들이 사는 방식과 근대적 사회 간의 모순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단순하게, 나쁜 철학이 프랑스에 스며들어서 나쁜 정치 제제(공화주의)가 들어섰다고 믿었다. “체제를 바꿉시다. 나쁜 이데올로기와 거짓 종교를 몰아냅시다. 그러면 모든 게 예전처럼 제자리로 돌아올 겁니다”, 이렇게 생각했을 뿐, 국가 체제와 권력의 철학을 넘어 사회 전체가 혁명의 영향을 받고 달라졌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산업화의 선구자들이면서도 먼 훗날 산업화가 가져올 효과 즉 그들이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던 구 사회의 파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도, 모든 악시옹 프랑세즈 지지자들도 자신들의 가치와 기술 발전과 같은 근대성 간의 대립을 인식하지 못했다. 나 역시도 이 대립을 인정하고 그 중요성을 헤아리기까지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반동, 문화적으로는 진보주의자였다.         _33~341. 대서양의 일족들

 

전쟁[2차 대전]은 다른 형태를 띠어 갔다. 열정적이고 이념적인 동시에 더욱 개인적이고 더욱 예언적인 형태가 되어 갔다. 예전 같았으면 군사 훈련에 복종시켰을 개별적 모험들을 더 부추기는 전쟁이 되어 갔다. 이 전쟁은 갑자기 혁명전이나 내전의 양상을 띠었다. 적과의 싸움인지, 부역자  처단인지, 정적 축출인지 더 이상 구분이 되지 않았다. 싸우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각자의 양심 문제, 심리 상태 또는 그와 반대로 모험가 기질 등이 드러났는데 이 모든 것은 1차 대전 때인 1914~1918년에는 몰랐거나 억눌렸던 것들이었다. 또한 저마다 자신과 가족들이 폭력이나 증오의 피해자라고 느꼈다. 이 전쟁은 이제 더 이상 국가적 결속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개인적인 정치 참여를 촉구하는 악과의 저항으로 받아들여졌다. 내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는 열정을 보면서 나는 얼마 전부터 느꼈던 정치 활동에 대한 반감을 다시 확인했고, 그 여파로 사건사에 대한 반감도 확고해졌다. 이 두 가지는 국가 하나만을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권력 또는 견제 세력, 권력 또는 혁명 같은 국가의 문제들은 국가 그리고 국가를 지탱하거나 반대하는 이데올로기들이 확산되는 바로 그 지점을 넘어서면 언제나 병적 상태로 변질되는 경향을 가진 건 아닌지, 그리하여 높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저 아래에서 오는 깊숙한 뿌리들의 힘, 명징한 인식의 세력들을 짓눌러 말살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_134~1354장 전쟁의 계절

 

당시 나는 역사에 대한 두 가지 태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과거가 없거나 과거를 갖고 싶지 않은 역사, 또는 같은 말이 되겠지만, 이데올로기적 필요에 따라 과거를 만드는 역사였다. 나치와 공산주의자, 본의 아니게 유산을 파괴하는 민족주의자들, 정치경제 권력의 이름 모를 실권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즉 아무런 매개 없이 맨몸으로 뛰어드는 역사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러한 돌발적인 민중 압력에 저항하는 역사, 독자성과 차별성, 연속성과 장기적 지속으로 이뤄진 역사이다. 자신의 과거에 충실한 사람들의 역사로, 나의 역사도 분명 거기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정신적 가족들이 증오했던 공동체 즉 유대인, 낭트 칙령의 신교도들, 박해와 유화적인 동화 압력 아래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끈질기게 지키는 모든 소수 집단의 역사도 거기에 속했다.

당시 내 눈에는, 우리의 오래된 근본은 모더니티의 충격으로 뿌리 뽑혔고, 나치주의, 공산주의, 진보의 숭배와 같은 세속적 거대 신앙이라는 확장된 역사 속으로 끌려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당시에는 그렇게 역사의 흐름에 휩쓸려 가는 기분에 열광할 수도 있었다.

_152~1535. 역사의 시간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나는 앙리 르페브르 교수의 집으로 찾아갔다. 자기가프랑스 민중사에서 특히 좋아한 점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685월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 대화가 떠올랐다. 당시 젊은 사학자들은 산업화 이전 사회의 구시대적 양상에 점점 더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우파, 특히 나와 같은 전통주의자 우파들은 내 책에 상당히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고 우리 안에 이런 엉뚱한 괴짜가 있었나 하는 반응이었다!

우파는 늘, 내가 앙시앵레짐과 현대 프랑스 간에 인류학적 단절을 설정했다고 비난했다. 우파는 현대 사회에 대해, 낡은 문화를 모르는 새로운 감수성이라는 장점을 거부했고, 과거 사회에 대해서는 거추장스러운 선물로 간주하면서 구시대의 장점을 거부했다. 따라서 우파는 양쪽의 차이들을 줄이려고 했고, 이런 차이들의 근본적 사고나 심성은 연구하지도 않고 정치적, 종교적 이데올로기 탓으로 돌렸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득세하고 있었지만 프랑스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럭셔리 마르크스주의자들marxisme de luxe은 내 책에 대해, 더 개명한 현재를 깎아내리면서 과거를 과대평가함으로써 전형적인 반동주의자 성향을 드러낸다고 비난했다.

_166~1675. 역사의 시간   

 

어느 날, 두꺼운 원고가 하나 배달되었다.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와 비이성의 관계를 다룬 철학박사 논문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저자였다.

원고를 읽는데 경이로웠다. 그러나 부르델 후임자로 들어와, 오랑고를 쫓아낸 새 경영진을 설득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그들은 은행가와 플레이보이 같은 보좌진이었는데 둘 다 출판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짐작하다시피, 미셸 푸코의 첫 번째 저서광기의 역Histoire de la folie였다. 결국 그들을 설득했고 그렇게 책이 나왔다. 일단 책이 나오면 출판인들은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더 이상 그 책 얘기를 듣지 않는 것! 잘 팔리는지도 중요하지 않았고 책을 알리려고 시도해서도 안 됐다. 빨리 잊어버리자! 다른 많은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출판사 협력자였던 어떤 사람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추천한 책을 열심히 팔지 말라고 책 판매원들에게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아세요? 우리는 이 책을 잡아야 했어요. 근데 관심이 없었죠.” 이런 상황에 기적적으로 책이 팔리면 그건 정말 독자들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_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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