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News

책소식

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

숲의 이야기꾼, 동물의 마음을 읽다 동물들의 머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학자들이 오랫동안 주장했듯 정말로 우리 인간만이 다채로운 감정을 만끽하는 것일까? 인간만 유일하게 의식 있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나무 수업』의 저자 페터 볼레벤은 이 책에서 동물의 감정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통역사이자 동물 세계의 자잘한 퍼즐 조각을 맞추어 그들의 비밀을 관찰할 수 있게끔 하는 길잡이를 자청한다.

작가
페터 볼레벤,
발매
2017.07.10
브랜드
[이마]
분야
[역사/인문/과학]
페이지
304p
크기
140*205mm
가격
15,000원
ISBN
979-11-86940-28-0 03400

책소식더보기

동물의 감정, 그 낯선 세계를 발견하다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감정이 있을까? 인간의 감정과 그 메커니즘을 둘러싼 비밀조차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은 현 시점에서 동물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기는 쉽지 않다. 최근 동물의 생존권이나 복지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동물권논의가 정치적 의제로도 부상했지만, 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현실이 여전히 압도적이며 동물 애호, 보호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동물은 인간에게 시혜적 대상에 머물러 있다. 동물이 인간처럼 고통과 슬픔, 통증을 느끼고 다른 생물 종과 교감을 나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떻게 달라질까?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은 동물의 감정이 인간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전작나무 수업으로 책이 처음 출간된 독일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페터 볼레벤의 신작이다. 30년 넘게 친환경적인 삼림을 조성하고 관리해 온 저자는 숲에서 만난 동물과 집에서 함께 살아온 반려동물을 오랜 기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깨달은 동물의 감정 세계를 감동적으로 서술한다. 저자는나무 수업과 마찬가지로 과감한 의인화와 최신 연구 결과를 쉽게 녹여 낸 서술 방식을 택해 동물의 감정을 우리에게 전하는 통역사이자 동물 세계의 자잘한 퍼즐을 맞추도록 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의 통역과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반려동물이나 숨어 있는 낯선 동물을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원으로 대하고 그들의 행복과 복지를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왜 강아지는 고아 멧돼지들을 입양했을까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인간의 감정에 비해 열등하다고 폄하하는 데는 본능과 무의식에 대한 인간의 뿌리 깊은 오해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의식과 본능을 구분하고 본능을 동물의 속성으로 서둘러 연관 짓고 동물에게서 관찰되는 의식이나 감정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여러 양상은 쉽게 무시해 버린다. 페터 볼레벤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의식과 본능에 의해 작동되며 그 점에 있어서는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본능적 모성애를 뛰어넘는 입양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인간의 경우 동물과 달리 의식적으로 활성화되는 모성애에 의해 입양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빼면 동물에게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동물의 감정이나 본능을 경시하는 태도는 인간의 특권적 지위 상실에 대한 불안과 관련되는 것이다.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각 동물에 대한 오래된 관념과 인간 중심적인 분류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동물의 존재 이유와 의의를 인간에게 이로운가 유해한가로 분류하고 이 분류법에 의거해 그들의 생사를 결정짓기까지 한다. 다람쥐는 유익하고 진드기는 유해한 동물일까? 이러한 분류는 모든 생물과 생태계가 마치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세계관이 아니라면 성립할 수 없다.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저 존재하고 생존을 위해 분투하며 인간의 의도에는 관심이 없다.

     

 동물도 느끼고 사랑하고 아프다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통증과 고통,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동물의 고통과 통증은 단순한 생물학적 기제가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세대를 내려오며 이어지고 진화 과정에 반영된다. 인간이 사냥하는 방식과 기술의 발전에 맞춰 동물은 생존 방식을 바꾸고,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무리들은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학습한다. 인간이 시각이 아니라 후각으로 사냥한다면 동물이 진화를 거치며 냄새를 잃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가정은 뼈아픈 대목이다.

동물이 인간처럼 행복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왜 인간은 저항감을 느끼는 것일까? 정치인이나 대형 축산업 등의 산업 관계자들, 때로는 과학자들조차 동물의 감정을 간과해 버린다. 저자는 독보적 서술 방식으로 택하고 있는 의인화에 대한 비판에도 이러한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동물을 인간과 비교하는 것이 비과학적이고 몽상적이며 신비적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인간 역시 동물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상기한다면 동물과 인간의 비교는 전혀 억지가 아니며 이러한 의인화를 통해서 동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노루와 멧돼지, 까마귀가 나름의 완벽한 삶을 살면서 생을 즐긴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오래된 숲의 낙엽 더미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뒹구는 작은 곤충에게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더보기

페터 볼레벤
Peter Wohlleben

1964년 독일 본에서 태어났으며 로텐부르크 임업대학을 졸업하고 산림 기사가 되었다. 20년 넘게 라인란트팔츠 주 산림 관리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6년 친환경적 산림 경영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휨멜 조합의 산림경영지도원이 되었다.

이곳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규모 기계 대신 말이나 사람의 손을 이용하여 산림을 관리하는 독일 전역에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이러한 친환경 관리 방식 덕분에 독일 내 친환경 숲에 수여하는 상을 수차례 받았다. 그는 이곳에 두 곳의 자연장 장지를 조성하고 원시림 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지역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여러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TV와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와 강연, 세미나, 저서를 통해 나무의 신비롭고 놀라운 삶과 숲 생태계 회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도서목차더보기

들어가는 글

쓰러질 때까지 모성애를 발휘하다 본능은 열등한 감정일까? 인간에 대한 사랑 머리에서 불이 반짝반짝 멍청한 돼지 감사의 마음 거짓과 속임수 도둑을 막아라! 용기를 내!

흑백 따뜻한 꿀벌, 차가운 사슴 집단 지성 속마음 구구단 그냥 재미있어서 욕망 죽음을 넘어서 이름 짓기 슬픔 부끄러움과 후회 공감 이타심 교육 자식을 독립시키는 법 야생은 야생이다 도요새 똥 특별한 향기 편리함 험한 날씨 통증 공포 상류층

착하고 못됐고 잠의 요정이 찾아오면 동물의 신탁 동물도 나이가 든다 낯선 세상 인공적 생활 공간 인간을 위하여 마음을 전하다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나가는 글: 한 걸음 뒤로

감사의 글

본문 주요문장더보기

다람쥐는 우리 인간이 동물 세계를 어떻게 나누고 구분하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다람쥐는 까만 단추 같은 눈망울이 너무나 귀엽고 붉은 색이 도는(갈색-검정색 버전도 있다)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으며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다. 또 다람쥐가 모아 두고 까먹은 식량 창고에서 이듬해 봄에 어린 나무가 솟아나기 때문에 새로운 숲의 창시자라 불러도 무방하다. 한마디로 다람쥐는 진정으로 유익한 동물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우리가 놓친 것이 있다. 바로 다람쥐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가 새의 새끼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택 서재 창으로는 그런 사냥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봄에 다람쥐가 나무줄기를 타고 기어오르면 현관 앞 늙은 소나무에 알을 낳은 회색머리지빠귀의 작은 둥지 밑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그러니까 다람쥐는 좋은 동물이 아니라 나쁜 동물인 것일까?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자연의 변덕은 우리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여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좋거나 유익한 것과는 다른 문제다. 우리가 사랑하는 새를 죽이는 다람쥐의 이면 역시 나쁜 것이 아니다. 다람쥐도 배가 고프고 역시나 새끼에게 젖을 먹여 새끼를 키워야 한다.다람쥐는 우리의 분류법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 그것들은 제 몸과 자기 종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살고자 하는 것이다. _13~15쓰러질 때까지 모성애를 발휘하다

 

감정을 강렬하게, 또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길은 정말 인간의 길 한 가지밖에 없는 것일까? 진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혹은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일방적이지 않다. 뇌가 정말로 조그만 새들이야말로 꼭 인간의 길이 아니어도 지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공룡의 시대를 거친 후 공룡의 후손으로 인정받는 조류의 진화는 우리와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조류는 신피질이 없어도 고도의 정신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DVR(등쪽뇌실능선, dorsal ventricular ridge)이라 부르는 부위가 있어 우리의 대뇌피질과 비슷한 임무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사람들은 층층 구조인 인간의 신피질과 달리 새의 그것은 작은 덩어리이기 때문에 인간과 비슷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까마귀와 무리를 이루어 사는 다른 새들의 지적 능력이 영장류에 버금가거나 심지어 영장류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 또한 동물의 감정과 관련해서는 학자들이 과도하게 조심스러운 논리를 펼치며, 명백한 정반대의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절대로 동물의 지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다. 왜 그러는 것일까? 그냥 (그리고 올바르게) 잘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_44~45머리에서 불이 반짝반짝

 

박새는 애벌레를 잡아먹어 유익하다. 고슴도치는 달팽이를 잡아먹어 유익하다. 달팽이는 채소를 갉아먹어 해롭다. 진딧물은 식물의 즙을 빨아 먹어 해롭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 해충에겐 그것의 갈 길을 가로막는 유익한 곤충이 있다. 하지만 자연을 그런 식으로 나누려면 자동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창조자의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정교하게 짜 맞추어 균형 있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설계도 말이다. 둘째 이 창조자는 세상을 완벽하게 인간의 욕구에 맞추어 만들었다. 이런 세계관에선 논리적으로 진드기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물론 나는 그것도 비판하고 싶지 않다. 자연 보호 협회조차 인공 새둥지를 만들어 인간에게 유익한 새를 도와주겠다는 주장을 퍼트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연을 정말로 그런 서랍에 억지로 끼워 넣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은 어떤 서랍에 들어가야 할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명력 넘치는 수백만 종의 생명체가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딱딱 아귀가 맞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인정사정없이 모든 자원을 착취하는 너무나 이기적인 인간 종이 생태계를 파괴한 후 그 생태계와 그곳의 주민들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_81~82흑백

 

벌들은 벌집 안에서 춤을 춰서 꽃꿀이 있는 곳과 그곳까지의 거리 정보를 제공하고 타액선의 즙을 꽃꿀에 첨가한 다음 그 혼합물을 작은 혓바닥에서 건조시켜 벌꿀로 가공한다. 또 밀랍을 분비하여 그것으로 벌집을 만든다. 학자들은 벌의 능력을 일찍부터 높이 평가했지만, 그렇게 작은 두뇌가 그와 같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그 모든 것을 일종의 초개체로 폄하했다. 그것들의 인지 능력도 집단 지성이라고 불렀다. 그런 초개체에선 모든 개체들이 열심히 협력하여 자신보다 훨씬 큰 신체의 능력을 발휘한다. 각 개체는 비교적 멍청하지만 다양한 과정의 협력과 환경 자극에 대한 반응 능력이 합쳐져서 이것들을 지성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식의 평가 방식은 개체의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각 개체를 큰 건물의 석재, 퍼즐의 조각으로 축소시킨다.베를린 자유대학의 란돌프 멘첼Randolf Menzel 교수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벌집 밖으로 처음 나온 어린 벌들이 태양을 일종의 나침반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벌은 태양을 이용하여 머릿속으로 집 주변의 지도를 그리고 그 지도에서 자신의 비행 항로를 찾아낸다. 한마디로 자기 주변이 어떤 모습인지를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머릿속 지도 덕분에 우리와 유사한 방식으로 방향을 찾는다.그러니까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벌이 기억을 하고 고민을 해서 새 길을 개발했다고 말이다. 이런 경우 집단 지성은 별 도움이 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불러온 것은 그 벌의 작은 머리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다른 지성이다. 미래를 계획하고 아직 본 적 없는 것을 생각하며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몸을 인식함으로써 벌은 자신을 의식한다. 란돌프 멘첼의 말대로 벌은 자기가 누구인지 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집단이 필요치 않다. _100~103집단 지성

 

나는 가치 있는 이타심은 진정한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돕기 위해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포기를 해야만 가치 있는 이타심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이 언제 그런 식의 이타심을 발휘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능이 높은 동물들을 살펴보면 대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새들이 바로 이런 동물이며, 실제로 새들에게선 꾸준히 희생의 장면이 목격된다. 예를 들어 박새는 천적이 다가오면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놈이 비명을 질러 경보를 발령한다. 그럼 다른 박새들이 얼른 몸을 숨겨 안전을 도모한다. 하지만 정작 비명을 지른 박새는 적의 관심을 끌게 되므로 위험에 처한다. 물론 녀석도 얼른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길 수 있겠지만 다른 박새들보다는 천적에게 붙들릴 위험이 매우 높다.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일까?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언뜻 무의미한 짓 같기도 하다. 비명을 지른 새가 잡아먹히나 다른 새가 잡아먹히나 그 종 전체에게는 전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볼 때 이타심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기도 하는 것이어서 희생정신이 크고 마음이 넓은 개체에게 다시 이익이 될 수 있다. _157~158이타심

 

인간은 시각의 동물이다. 눈으로 보고 사냥을 한다. 따라서 사냥감이 될 수 있는 동물들은 어떻게 하든 인간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만약 우리가 냄새를 맡고 사냥을 한다면 동물들은 진화를 거치면서 아마도 냄새를 잃었을 것이고, 우리가 소리를 듣고 사냥을 한다면 극도로 소리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사냥을 하기에 동물들은 우리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낮에 조심을 한다. 어두워지면 인간은 거의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사냥감들이 활동을 밤으로 미루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우리도 노루와 사슴과 멧돼지가 밤에 활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녀석들은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먹이를 먹어야 한다. 그래서 낮에는 으슥한 수풀이나 인적 드문 숲에서 먹이를 찾는다. 초지나 숲 가장자리에서 먹이를 찾는 것이 지극히 정상인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인간들의 시야가 흐려지는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트인 곳으로 나온다.숲에서 일을 하거나 사냥을 하는 사람이라면 야생동물들이 경험을 수집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사냥 시설은 맛난 먹이가 잔뜩 널려 있는 곳에 서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사냥꾼들이 씨를 뿌려 사슴이나 노루가 좋아하는 풀을 키운 . 그런 야생동물 풀밭에서 키우는 풀을 두고 흔히 야생동물 풀밭 찌개라고 부른다.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돌지 않는가? 그래서 밤마다 룰렛 게임이 벌어진다. 주린 배가 이기면 노루와 사슴이 너무 이른 시각에 숲길로 나와 사냥꾼의 시야로 걸어간다. 공포가 이기면 녀석들이 주린 배를 안고 어둠이 내릴 때까지 참기 때문에 사냥꾼이 빈손으로 돌아간다. _210~212공포

 

모든 동물 종이 세상을 다 다르게 보고 느낀다면 수십만 개의 다른 세상이 존재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이 중에서 많은 세상은 우리가 찾아 주기를 고대하며 우리 곁에 숨어 있. 앞서 소개한 동물 종들 말고도 중부 유럽에는 너무 작고 매력이 없어서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되지 않은 동물이 수천 종이나 있다. 당연히 우리는 녀석들의 감정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우리가 눈여겨볼 만큼 중요한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녀석들에게 투자할 연구비도 없는 것이다. 녀석들의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며, 녀석들이 어떤 욕망을 품으며, 지금과 같은 상업적인 산림 경영으로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알지 못하기에 누구도 녀석들을 위해 보호 구역을 지정할 뜻이 없는 것이다. _261낯선 세상

 

우리는 보통 인간과 동물의 소통을 너무나 일방적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다른 종에게 자신의 언어를 가르치려고만 든다. 상대편 동물이 우리의 개념이나 명령을 알아듣고,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으면 매우 지능이 높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사랑앵무, 까마귀, 코코 같은 고릴라가 질문에 우리의 언어로 대답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감격하여 감탄사를 쏟아 낸다.

우리가 실제로 이 지구에서 가장 지적인 종이라면나는 그렇다고 생각한왜 과학은 정반대의 길을 걷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실험 동물에게 몇 년씩 힘들여 제스처를 가르칠까? 지금의 연구 수준에서 보면 우리보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동물들에게 말이다. 우리가 동물의 언어를 배우는 쪽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가능성을 갖추었다. 예전에는 말과 똑같이 두 가지 음의 히히힝 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가 우리의 관심사를 각각의 동물 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방향으로 진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_283마음을 전하다

 

우리는 다른 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진화해 왔기에 그들과 싸우고 그들과 더불어 생존해야 했다. 단연코 늑대와 곰, 야생마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낯선 인간의 얼굴을 해독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육감이 우리를 속일 수도 있고 개나 고양이의 행동에 너무 과도한 감정이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본능은 옳다. 그렇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놀라운 발견이 아니다. 그저 여태 우리가 동물을 향해 품었던 감정들을 재확인하는 차원일 뿐이다.

동물의 감정을 부인하는 목소리에서 나는 희미하게나마 약간의 불안을 감지한다.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나아가 동물의 이용이 어려워질 것이며 밥을 먹을 때마다,

멀티미디어더보기